몇 해 전에는 기상 관측 이래 최장 장마를 기록하더니, 올해는 최단 장마를 기록했다. 올해는 사실상 장마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본래 우리나라에서는 장마 후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그 공식은 그대로 지켜졌지만 언제부터인가 무더위보다는 폭염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외출을 하면 물속을 걷는 것 같았다고들 말하는게 이 표현이 바로 ‘폭염’의 정도를 묘사한다. 불과 며칠 전 7월 8일에는 서울, 경기 서남권에 1시간 동안 80mm의 비가 쏟아부었는데, 이 현상을 ‘국지성 집중호우’라고 부른다. 소나기란 말은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태어난 후로 쭉 이상기후였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2018년 작은 모임에서 시작된 ‘청소년기후행동’이 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글로벌 기후 운동과 연대해 오고 있으며, 2020년 3월에는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대응이 청소년의 생존권, 환경권, 인간답게 살 권리, 평등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요지의 기후 헌법소원”(https://tinyurl.com/yvfzvygw)을 청구했다.
《기후 극장》을 쓰고 그린 황승미 선생님은 기획을 논의하던 단계부터 지식을 해설하는 일반적인 논픽션 글쓰기보다는 다른 방식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희곡’을 선택했다. 무대에 올리는 이야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관객과의 상호 교감을 전제한다. 저자는 환경 문제라는 큰 범주에 묶일 수 있는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에서 소재를 선별하고 관련된 인물들을 불러내 독자라는 관객과 대화를 나누듯 말하게 한다. 예컨대, 제임스 왓슨을 등장시킨다면, 증기기관 발명자이고 산업혁명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소개될 테다. 저자는 실제로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을 따로 있고 왓슨이 실제한 일을 정확하게 전달하며, 증기기관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데 혁혁한 구실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증기기관이라는 기계 발명만으로 가능한 일인지 반문하게 한다. 왓슨은 제1막의 주요 등장인물인데 1막에서는 플라톤의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형식을 차용한 기후 법정이 열린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피의자로 지목된 석탄, 석유, 탄소 같은 물질들을 소환하고, 피의자들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주요 증인을 신청해 변론을 벌인다.
부제에 들어 있는 ‘우리 공동의 과거와 미래’는 《기후 극장》이 역사적 관점을 견지하고자 했음을 시사한다. 책 전체는 저자가 꾸며낸 이야기로 꾸려졌는데,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소재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한다. 이런 사실들에 관해 더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책 끝에 실린 ‘부록’에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책의 부제는 세계가 협력해 기후 변화에 공동 대응하도록 상설 기구를 만들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보고서 제목에서 따 왔다. 부록에 실린 설명 일부를 읽어보자.
”1970년대 초에는 아직 기후 문제가 주요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리우 지구정상회의, 교토의정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1987년 브룬틀란 보고서(Brundtland Report) 이후 이루어진 노력 덕분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속가능 발전’ 개념도 이때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보고서의 원제는〈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인데 흔히 브룬틀란 보고서라 부르는 이유는, 당시 이 일을 주도한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 위원장이 노르웨이 총리 그로 할렘 브룬틀란(Gro Harlem Brundtland)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이 이후 국제 환경과 개발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고,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지구정상회의가 개최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공중파 뉴스나 지면에서 익히 들어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세계기후회의’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는 국제 협의체들인데, 꾸준히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헷갈리는 이 기구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슨 일을 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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