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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탑 행성

시리즈
마로 시리즈 Maro Series
저자/역자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난주 옮김
출간일
면수/판형/정가
ISBN
태그
SF
핵전쟁
아포칼립스
하이브리드차일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SF

2권 연작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을 묶어 묵직한 합본으로 출간합니다.
1권(전편)보다 재미있는 2권(속편)은 없다고 하지요. 시리즈의 속성이기도 한데요. 이 책은 그런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아요. 2권이 더 재미있습니다. 해서 더더욱 한국어판을 합본으로 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단순히 '재미있다'고 느꼈던 부분을 오에 겐자부로 는 이렇게 말했더군요.
『치료탑 행성』이 『치료탑』보다 좋다고, 적어도 보다 성숙했다고 느끼는 것은 몇몇 인물 때문입니다. 특히 사쿠. 내가 만든 인물 중에서 드물게 나는 그 성숙함에 순순히 경의를 느낍니다. 나아가 리쓰코에게도. 그러나 이 두 사람을 뒤좇듯이(또는 앞지를 정도로) 성숙한 것은 작자인 나의 '슬픔'이라는 감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그것은 내가 '죽음'에 대해서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의 성숙과도 이어지지 않을까? 이 소설을 쓴 지 17년이 지나 지금 이렇게 문고판의 후기를 쓰고 있는 나는 죽음을 향한 길에 훨씬 더 깊이 들어서 있습니다. 지금은 죽어 저세상으로 간 친구가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에서 시작된 죽음에 관한 나의 느낌과 생각이 확실하게 성숙한 것을 인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슬픔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한 인간의 성숙과 직결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SF치고는 다분히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지루하고 무거울 거란 직감이 팍 꽂힌다구요? 아, 절대 그렇진 않아요.
오에의 다른 작품을 (만에 하나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그가 큰 이야기의 얼개를 얼마나 치밀하게 구성하는지 아실 겁니다. 『치료탑 행성』이 과학기술의 진보나 우주의 신비에 대해 보다 덜 이야기하고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두 가지만 얘기해볼께요.
일. 우린 한국 독자이니, 등장인물 중 한국인 이 씨가 있고, 한반도에는 통일국가가 수립된 것으로 나오죠. 오염된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대출발'을 한 후, 조선통일국가에선 이런 일이 벌어졌네요. 대출발 우주선에 타지 못하고 낙오한 지구의 잔류자들은 이류 삼류 인간이라는 자격지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행방을 감추어 선택(받을 만한 자격이 있음에도)을 회피하고 지구 재건을 위해 잔류를 자처한 자도 있는데요. 한반도에는 고 씨 성을 가진 지도자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정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나라를 훌륭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한국의 의료를 재건하기 위해 의사들이 대거 모여 회의를 하고 있던 호텔에 큰 화재가 발생하죠. 흔한 사다리조차 없다는 것이 혼란기의 일반적 사회상이었으니, 이들을 구조하지 못하면 의료인력 대부분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대통령 고 씨가 문어처럼 변신하더니 고층 호텔 외벽을 기어올라 의사들을 모조리 구조했습니다. 한데, 이처럼 큰일을 해낸 대통령을 사람들은 돌로 쳐죽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하, 그 이유는 티저로 남겨두는 걸로...
둘. 치료탑과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세티 프로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콘택트>(1997)를 보셨다면 설명이 필요 없을 텐데요. 최근 개봉했던 <콘택트: ARRIVAL>(2017)가 독특한 영상으로 형상화한 외계언어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이 작품에도 등장합니다. 당시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던 기호주의의 영향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조금 어렵지만 한 대목 보실까요?
1. 치료탑에 관하여. [중략] 치료탑은 하나의 쓰인 텍스트이다. 인류 측의, 즉 이쪽 우주에는 이 기호를 만든 사람이 없다. 저자는 부재한다. 인류가 이 행성에 도달하기 전에 엠피레오 고원에 인류에 해당하는 존재가 실재했다는 흔적은 없다. 즉 단적인 수신자 부재. 이 기호가 어떤 지시 대상을 갖고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동시에 그 어떤 콘텍스트에 있다고도. 이 행성에서는 찾을 수 없다. 해독자 코드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기호론의 고전 이론에 준해 말할 수는 있다. 치료탑은 읽을 수 있다!
2. 저편 우주의 랑그에 대하여. 그것은 인류가 과거에 경험하고 구상한 그 어떤 기호론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편에 있는 지성체가 어떤 식으로든 언어 행위를 하는 존재라면, 그 하나하나의 파롤 배후에 언어의 바다, 기호론적인 바다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저편 우주의 랑그’라 부르기로 한다.
(457~458면)